금정산 몰라도 산행 초보라도 '언제든 OK'
범어사~고당봉 코스는 굳이 금정산 챌린지에 포함되지 않아도 유명세를 타는 등로이다. 다만 금정산이 생소한 외지인들이나 산행 초보자에겐 입문 코스로 손색이 없어 챌린지에 배치했다.
산행은 범어사에서 시작해 북문을 지나 고당봉에 오른 후 기점으로 돌아온다. 중간중간 가파른 구간도 있지만 고당봉으로 가는 클래식한 구간이라 산길이 잘 정비돼 있다. 고당봉까지 편도로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오르는 곳곳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이 많아 휴식과 여유를 즐긴다면 편도 3시간에서 3시간 30분이면 충분하겠다.
출발점은 범어사 일주문인 조계문(曹溪門)이다. 이 문은 중국 선종(禪宗)의 제6대 조사인 혜능 스님이 법문을 펼쳤던 중국 광둥성 조계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일반적인 사찰의 일주문은 기둥이 2개지만 조계문은 기둥 4개가 일렬로 늘어선 형태이다. 지름 1m가 넘는 4개의 높은 돌기둥 위에 짧은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겹처마 지붕을 얹었다. 구조적·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2006년 국내 사찰 일주문 가운데 처음으로 국가 보물 제1461호에 지정됐다.

조계문 왼편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북문(고당봉)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른 아침 산에 올랐더니 숲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초록빛 나뭇잎에 반짝이고, 매미 울음소리가 귓가를 채운다. 배경음처럼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고당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북문으로 향하는 길은 거대한 바위 무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이른바 ‘돌바다’라 불리는 암괴류 지형으로 화강암 절리에 스며든 물이 얼고 녹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만들어낸 장관이다. 자연이 빚어낸 돌바다는 금정산 특유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화강암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숨이 가빠 온다.

한참을 올라 북문에 닿았다. 북문 중심으로 성곽이 남북으로 길게 널으서며 도심에선 볼 수 없는 장쾌한 경관이 펼쳐진다.
금정산성은 신라시대에 일부 구간에 성곽이 조성됐다는 주장이 있지만, 조선시대 숙종 때 바다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고자 석성 형태로 본격적으로 축성됐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유실됐고 북문은 1989년에 복원됐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2017년 금정산성 4대문 이름 짓기 사업을 통해 북문은 세심문(洗心門)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세심문은 4대 성문 중 가장 투박하지만 담백한 건축미를 지녔다.


북문 부근에 있는 세심정 약수터는 산행의 단비 같은 존재다. 시원한 약수를 한 모금 들이켜고 나니 낙뢰로 파손된 고당봉 표석비가 눈에 들어왔다. 2016년 8월 1일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 때 벼락을 맞고 부서진 뒤 이곳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고당봉까지 900m 남짓. 북문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한층 가팔라진다. 바윗길과 흙길, 나무 덱을 지나면서 점점 숨이 차오르지만 정상 풍경을 상상하며 힘을 낸다. 마침내 고당봉의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고당봉에 서자 사방으로 시야가 시원하게 트였다. 북쪽으로는 경남 양산지역 일대가 보이고, 동쪽으로는 남구 수영구 해운대구 땅을 넘어 멀리 푸른 동해 바다가 펼쳐졌다. 서쪽으로는 경남 김해와 서부산의 시가지와 낙동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지리산까지 조망할 수 있단다. 정상을 목표로 산을 올랐지만 직접 고당봉에 서보니 하늘과 맞닿은 듯한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산행 초보라면 그 풍경은 기대 이상일 테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요한 정상의 풍경이 온전히 내 것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서 자연과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산은 흔치 않다. 땀을 쏟으며 오른 끝에서 만난 고당봉의 풍경은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치 않았다. 무더위에도 산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보며 금정산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산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고당봉 인증 샷은 금정산 최고의 포토존이라 평일에도 인파가 몰린다. 챌린지 참가자들이 인증 사진을 찍을 때는 질서 있게, 서로 배려하면 좋겠다.
고당봉을 딛고 범어사로 돌아올 때는 왔던 길로 가도 되지만 여유가 있다면 정상에서 20분 정도 내리막길에 있는 금샘이나 미륵사를 들러도 된다. 금샘은 예전에는 직접 올라가 볼 수 있었지만, 잦은 안전사고로 지금은 출입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