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구'하다 보니 어느새 헌걸찬 마루금 만나
양산 계석마을은 금정산 북쪽 능선의 들머리 같은 곳이다. 마을에서 출발해 장군봉으로 이르는 마루금은 금백(금정산~백양산) 종주의 서막이자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장군봉만 오르면 금백종주 5할은 넘겼다'라 할 정도니 오르기 만만찮다. 다행히 금정산 챌린지 2번 코스는 장군봉까지만 가는 맛보기 구간이라 부담이 덜하다.
계석마을~장군봉 구간은 길 곳곳에 흐르는 '이바구'를 나누며 가는 길이다. 장군봉으로 오르는 능선부터는 부산 도심과 서부산 일대와 경남 김해 양산을 좌우로 조망할 수 있다. 부산 도심에서 출발해 고당봉으로 오르면 좀처럼 보기 힘든 고당봉의 북면을 조망할 수 있다.
기점은 계석마을 앞 비석이다. 계석마을은 양산 지역 대표 당산이 있던 곳이라 예전엔 '제석(祭釋)'마을로 불렀다. 비석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고, 대정마을 아파트 오른쪽으로 오르막으로 진행한다. 마을 전답을 감아 도는 오솔길인가 싶었더니 곧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만난다.
계석·석산마을 사람들이 정월대보름에 기도했다는 '뒷등대'를 지나면, 목동들이 소를 타고 올랐던 '소탄등'을 만난다. 걷노라면 군데군데 불에 덴 소나무가 보인다. 2000년 6월 9일 발생한 산불의 상흔이다. 양산시는 이 일대를 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불재난 체험 탐방길'을 조성해 산 교육장으로 활용한다. 수십 년 키운 나무가 잿더미로 바뀌는 건 몇 시간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교훈을 새삼 새긴다.
길은 '말미' 안내판으로 이어진다. 설명하는 글이 지워졌지만, 말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전하는 얘기로는 조선 초기에 활약한 장수 이징규가 금정산에서 무술을 수련하며 타고 다닌 말이 죽자 여기에 묻었다고 한다. 징규는 세조에 반기를 들어 난을 일으킨 이징옥 장군의 동생이다. 그는 맏형 이징석과 더불어 '삼장수' 멤버인데, 이들은 무과에 장원급제해 종1품까지 올랐다. 요즘으로 따지면 육사를 졸업해 별을 달았다는 거다. 하나, 징옥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형제들과 후손들의 운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길로 떨어졌을 것이다.
말미를 뒤로 하고 숲길을 빠져나오니 질메쉼터에 닿는다. 여기까지는 '이바구'를 도란도란하며 왔지만 이제부터는 신들메를 단단히 고쳐 매야 한다. 질메쉼터에서 20여 분 가풀막을 오롯이 느끼며 올라야 한다. '해발 530m' 이정표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20여 분 길과 씨름하면 다방봉(536m)을 만난다.
이후 장군봉-은동굴 갈림길까지 고도는 600m로 오른다. 숲에 가려서 답답하다 싶을 즈음 장군봉과 그 뒤 고당봉이 수줍은 듯이 저 멀리 서 있다. 아슴아슴 그 풍경을 보는데, 아뿔싸 장군봉의 최대 난관 철제 계단이 눈에 확 들어온다. 매번 산행에 느끼는 것이지만 산행 때 '눈은 발보다 게으르다.' 눈으로 저길 언제 넘어가나 싶은데, 이내 발은 고된 구간을 통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눈보다 발을 믿는다. 5분가량 '눈보다 발!'을 주저리며 철제 계단 마지막을 딛는다. 여세를 몰아 727봉까지 힘을 낸다. 이곳 조망도 엄지 척이다. 여기서 장군봉까지 다시 한번 고도가 급히 떨어졌다가 올라붙는다. 15분 정도.
장군봉(734.5m)은 이름 같아선 첨봉일 줄 알았는데, 오르고 보니 돌덩이로 만든 대청처럼 펑퍼짐하다. 파노라마 조망은 근사하지만, 그늘 공간이 인색해 쉬려면 봉 주변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장군봉 끝자락에 섰다. 남서 방향에 있는 고당봉이 '빨리 오라' 손짓하는 듯 눈에 밟힌다. 장군봉에서 갑오봉으로 이어지는 억새로 유명한 장군 평전이 발아래에 있다. 그 왼쪽으로 낙동정맥 마루금을 이어받는 계명봉이 눈에 들어온다. 고당봉을 바라보며 챌린지 8번 코스 금백종주를 상상해 본다. '눈은 발보다 게으르다.' 이 말을 금백종주에선 더 자주 되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올라온 길을 답습하면 된다. 다만 은동굴·법륜사 갈림길을 만나 하산로로 선택했다면 인적이 드물어 길이 희미하고 내리막이 가팔라 유의해야 한다. 전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