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든 학이든, 기묘한 멧부리에 그저 경탄만
상계봉(上鷄峰·640.2m). 어떤 지도나 책자에는 상학봉(上鶴峰)으로 표기되거나 어떤 이에게는 상학산(上鶴山)이라 불리는 곳. 봉우리 모양 때문에 닭이나 학을 닮았든…. 어쨌거나 땅에서 위를 바라본 암봉들이 퍽 신기했던….
그 상계봉이 금정산 챌린지 3번 코스의 종점이다. 범어사나 금정산성 동문 기점에서 고당봉을 몇 번 오른 경력 소유자라도 상계봉은 먼 산 보듯이 ‘입맛’만 다신 경험이 제법 있을 터.
상계봉은 북구 화명동에서 파리봉을 거쳐 오르거나 남문에서 제1망루로 틀어 상계봉으로 연결하는 구간이 대세이다. 챌린지 코스 의뢰차 북구에 자문하니 만덕동에서 상계봉을 바라보며 올라가는 구간이 '산심비(산행 대비 심리적 만족)'가 좋다고 한다. 대세를 잠시 접고 산심비를 따른다. 상학초교~상계봉 왕복 거리는 5㎞, 3~4시간쯤 걸린다. 금정산 챌린지 8개 코스 중 소요 거리·시간이 가장 적다. 그래도 긴장하자. ‘동네 뒷산’은 만만히 보다간 어김없이 ‘악산’이 되는 법이니….

상학초등학교 정문에서 인증 사진을 담는다. 상계봉을 학교 배경에 뒀지만 교가에는 '상학산'이 등장한다. "상학산 맑은 바람 감도는 언덕(…). 우리들 가는 길엔 웃음꽃 핀다." 가사처럼 산정의 맑은 바람을 꿈꾸며 길을 연다. 웃음꽃이 필지는 산을 올라봐야 알 테다.
금정산 자락이지만 북구 주민들은 상계봉을 주산으로 친다. 요즘은 고당봉 명성에 가려, 평범한 '봉'으로 대우받지만 예전엔 대천천을 분계로 '북 금정 남 상계' 할 정도로 고당봉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예부터 '금정산 연봉들이 성채를 닮았다'는 '얼평'이 있었는데, 상계봉 멧부리가 그런 해석에 상당한 역할을 했지 싶다.
지역민들의 주산인 만큼 등로도 헷갈리지 않게 정비돼 있다. 북구 만덕동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상계봉이 '큰 바위 얼굴' 마냥 서 있다. 금정산이 부산의 진산이라지만, 상계봉은 북구를 지키는 지역민의 진산이다.
상계봉 구간은 다른 챌린지 코스보다 짧지만, '기승전 된비알' 끝에 만나는 '결' 대목에선 조망의 풍부함, 산정에 올랐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다른 봉 못지않게 빼어나다.
상학초등학교 정문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산행로 입구가 나 있다. 사방댐 물소리를 들으면서 숲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동네 어르신들의 자연 헬스장 '산스장'을 지나면서부터 경사를 느낀다.
고도를 계속 높이면, 오른쪽으로 너덜겅이 나온다. 신들의 장난일까. 돌들의 분란일까. 얼핏 봐선 바윗덩어리들이 계통 없이 쌓인 듯하지만, 다가가서 보면 큰 돌 작은 돌들이 저마다 설명할 수 없는 질서로 웅크리고 있다.
너덜겅 부근에서 산허리를 나선형 탑을 돌듯 경사를 받으며 오른다. 중간중간 다리쉼을 한다. 30여 분 된비알을 대하다 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상계봉이 보인다. 산행 시작 전 땅에서 봤던 멧부리 모양이 더욱 첨예하고 확연하게 다가온다. 제법 경사와 씨름하다 보니 봉 아래 전망대에서 배낭을 푼다. 낙동강과 김해공항, 김해평야가 한 폭의 풍경화처럼 화각을 넉넉히 주며 조망된다. 금정산 고당봉에서도 얼추 봤던 풍경이지만 여기서 더 뚜렷이 보이는 느낌이다.
풍경 구경을 정리하고 머리 위에 걸린 상계봉으로 오른다. 화강암 침봉들이 하늘을 향해 찌를 듯이 우후죽순으로 뻗어 있다. 어떤 이는 닭 볏을 닮아 벼슬봉이라고도 한다는데, 닭이든 학이든 금정산~백양산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멧부리다. '계'나 '학'을 연상해서 보면 어떤 이들은 돌로 만든 왕관, 장수의 투구를 떠올리기도 한단다. 조금 표현을 과하게 하면 남미 파타고니아 지역에 있는 피츠로이산(Fitz Roy)의 뾰족한 봉우리도 연상된다. 물론 규모 면에서 턱없이 적지만….
이런 해석·상상과 무관하게 만덕동 주민들은 상계봉의 신령·신비스러운 기운 때문에 여러 이름을 섞어 쓴다. 생존의 기가 살아있다 해서 '생기봉', 산신령이 만들어 기묘하다고 '신기봉', 계란이 껍질을 깨고 닭으로 성장하는 뜻에서 '성계봉'으로도 불린다.
상계봉 표지석 인증 사진을 찍다 보니 '상학산'으로 추정되는 한자 부분이 파손되었다. 상계봉과 상학산이 혼용되고, 어떤 이는 상계봉이 여기가 아니라 제1망루 부근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하니, 그런 논란이 귀찮고 짜증 나서 글자를 파냈을까? 그 억하심정을 '1'이라도 이해하고 싶지만, 무거운 비석을 여기까지 들고 와 세운 만덕동 상계봉축제추진위원회의 정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된다. 그러고 보니 알려진 전국에 알려진 산의 정상 표지석이 파손·훼손·도난되는 사건·사고가 심심찮게 있다는데 이러다가 표지석 감시용 CCTV가 설치되지 않을지 쓴웃음이 난다.
상계봉에서 북쪽으로 10여 분 가면 금정산성 제1망루 터가 있다. 여유가 있다면 상계봉 오른 김에 제1망루를 지나 파리봉을 구경하고 돌아와도 좋겠다. 상계봉을 지나 석불사 방면으로 꺾어 사찰을 구경하고 상학초등학교로 돌아 와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