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 숲길 걷다 보면 만나는 도심 파노라마 장관
챌린지 네 번째 코스인 백양산과 애진봉은 마음 같아선 한달음에 달려가도 될 만큼―도상 거리 500m·약 800걸음―가깝다. 그러니 5번 애진봉 코스를 밟더라도 백양산에 갈 수 있고, 4번 백양산 코스를 답사하더라도 애진봉을 피할 수 없을 게다.
코스 기점이자 첫 체크포인트는 부산어린이대공원 입구에 있는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이다. 1940년 11월 23일 있었던 사건을 기리는 탑이다. 당시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에서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가 열렸다. 1회 때 동래중(현 동래고)이 우승했기에 부산 경남 지역 일본인 학교 교관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2회 대회에서는 일본인 학교를 우승시켜야 했다. 마지막 종목인 장거리 구보 행군을 앞두고 동래중의 우승이 확실했다. 행군에서 실격하더라도 지금까지 동래중의 총점이 월등히 앞섰다. 한데 1위는 뜻밖에도 부산중이었다. 동래중 교사와 학생들이 강하게 항의했다. 심판장 노다이(乃台) 육군 대좌는 "판정은 신성하다. 판정을 따르라"고 오히려 항의를 비난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지만 조선인 학생들은 인정할 수 없었다. 동래중과 부산제2상업학교(현 개성고) 학생 1000여 명이 '황성옛터'를 부르며 거리를 행진했다. 시위대는 영주터널 부근에 있던 노다이의 관사로 몰려가 돌을 던졌다. 부산헌병대가 학생 200여 명을 체포해 고문했다. 주모자로 몰린 학생 15명이 옥에 갇혔다. 이 사건은 일제강점기 말에 발생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항일학생독립운동으로 평가된다.
의거기념탑을 벗어나 성지곡수원지로 이동한다. 길이 여러 갈래라 어린이대공원 내부 순환로나 편백숲 쪽으로 가도 된다. 성지곡수원지 주변에 요산 김정한의 문학비가 있다.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은 아니다." 요산의 말을 새기며 '사람이 갈 길'을 걷는다.
성지곡 수원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중력식 콘크리트 댐이자 근대적 상수도 시설이다. 댐 길이 112m 높이 27m 수심 22.5m이다. 부산에 식수를 공급할 요량으로 1909년 건립됐다. 저수량 약 61만t. 1910년 부산 전체 인구 4만 5000명이 150일간 쓸 수 있는 양이었단다. 식수로 쓰고 남은 물은 농업용수로 공급됐다. 1972년 낙동강 상수도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수원지는 공업용수 공급처로 됐다가 1985년 1월 이마저도 중단했다. 지금은 상수도 시설보다 지역민이 찾는 유원지로 자리매김했다.
성지곡수원지를 시계 방향으로 돌아 편백나무 숲으로 오른다. 10여 분 오르면 백양산·애진봉으로 가는 길을 만난다. 편백이 빽빽히 호위하는 곳이라 공기가 싱그럽고 눈은 시원하다. 편백은 측백나뭇과의 상록 침엽수로 일본에서 들여와 심은 것이다. 항균·살균 효과와 피부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는 편백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한다. 어린이대공원에서 백양산·애진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2016년부터 숲을 가꾸면서 정비됐다. 그 성과로 이 일대에 치유의 숲이 생겼다. 숲길이 뚜렷하고 길을 걷는 정취도 호젓하다. 경사도 적당해 부산진구는 이 길을 산악 마라톤 코스로도 활용한다.
20분가량 피톤치드를 흡입(?)하듯 걸으면 바람고개·공룡 발자국 유적지 갈림길을 만난다. 발자국 유적지를 보며 왼쪽 사면 길을 고른다.
앞서 숲길이 너무 순했던 탓일까? 경사가 가팔라 새삼 숨이 차오른다. 공룡 발자국 유적지를 10여 분 된비알과 씨름하면 목재 덱을 만난다. 목재 덱에서 15분가량 고도를 올리면 헬기장이 기다린다. 저 멀리 백양산 꼭대기가 보인다. 애진봉은 헬기장을 벗어나 왼쪽으로 600m 더 가야 한다.
애진봉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자연적인 멧부리가 아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도 당연히 등록되지 않았다. 부산진구에 따르면 1998년 1월 1일 백양산 남쪽 등마루 589m 지점(현 애진봉)에 부산진구사랑 구민 한마음동산을 조성하고 비석을 세웠다. 비 이름은 '여기 큰 돌 하나 세워 우리 소망 이루리라.' 천지신명의 은총이 부산진구 구민들에게 천세만세 이어져, 자자손손이 영광과 축복을 누리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비석만으로 우주의 기운을 모으기 부족하다 여겼을까. 2007년부터 매년 애진봉 주변에 철쭉을 심었고 현재 20만 그루에 달해 부산 지역 최대 철쭉 군락지가 형성됐다. 애초 부산진구민의 번영을 빌고자 애진봉을 조성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매년 4~5월 만발하는 철쭉 바다와 전망대 4곳의 풍부한 도심 조망을 선사하며 부산진구 구민만이 아닌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최근에는 애진봉 표지석 인근에 하트 문형 포토 존을 설치해 추억거리도 추가했다.
애진봉 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고 돌아가는 걸음을 재촉한다. 출발 지점인 어린이대공원으로 방면으로 되돌아가도 되고, 선암사 쪽으로 내려가도 된다. 각각 넉넉잡아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